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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예전에 과학잡지에선가 읽은 나비 날개가 커다란 이유가 인상적이었다. 다 가누기 힘들 정도로 날개가 엄청 큰 덕에 계속 휘청거리고 자기 날갯짓에 생긴 바람(와류)에 휩쓸려 비틀거리면서 날기 때문에 새들이 나비의 궤도를 예측해서 잡는 게 엄청 힘들어져 생존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새들은 빠르게 나비를 잡기 위해 매끄러운 곡선(아마도 싸이클로이드)을 타고 내려와 나비의 궤도로 내려앉지만, 나비에게 궤도란 자기를 끌고 가는 가상일 뿐 실제로는 매순간 자기 궤도를 이탈하며 맴돌고 있기 때문에 나비는 생각보다 쉽게 잡히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비 날개가 커다란 이유”라기보단 “나비가 손쉬운 비행에 방해가 되는 뒷날개를 (진화의 과정 안에서) 여전히 지니고 있는 이유”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형편없는 나를 대하는 법, 못해도 잘 사는 법 이게 왜 중요하냐면 살다보면 계속 배운다. 배움의 과정에서 ‘내가 제일 못한다’ 생각하는 기간이 매우 길기 때문에 그걸 어떻게 대하는지가 능력, 성과, 행복에 큰 영향을 준다. 난 그걸 배울 기회를 한번 놓쳤다.

난 어렸을 때부터 똑똑했고 책벌레라 어딜 가도 어른들이 혀를 내두르는 아이였다. 평생 그렇게 살다 미국 유학을 가니 바보가 된거다. 그때는 어려서 감정조절 능력도 부족했고, 결과주의적 부모님과 한국입시에 찌들어서 뭐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내 바보같음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내 모든 걸 갈아넣어서 그걸 극복하는데 썼다. 내 영어는 처참했다. “May I go to the bathroom” 딱 한 문장만 말할 줄 알고, 교과서 한 면에 모르는 단어가 절반이고, 시험 답안이 맞아도 스펠링을 틀려서 오답처리가 됐다. 한 마디면 풀릴 오해를 못 풀어서 매일 호스트가족에게 혼나고

서럽고 답답하고, 내가 살던 시골마을에서는 누구도 내 문화와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가엽고 주눅든 작은 동양인 아이일 뿐. 누가 입에 재갈을 채운 것 같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영어공부로 풀었다.

밤늦게까지 단어를 찾아 외웠고, 교과서와 강의 슬라이드를 통째로 암기하고, 혼자 있을 때 연극하듯 그날 들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하곤 했다. 울면서 공부한 날이 울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그만큼 노력했고 운좋게 언어능력도 타고나서 결과도 좋았다.

어떤 사람을 이걸 미담으로 부른다. 그들에게 나는 좆까라고 하고 싶다. 난 그냥 정신적 상담이 필요한 마음이 아픈 아이였고 미국에서의 첫 1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하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에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돌아가봤자 다른 종류의 폭력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건 사담이니 건너뛰고.

난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됐었다. 누구도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잘 해야 한다, 못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강박이 내 10대와 20대 초반을 지배했다. 그렇게 남들보다 앞선 영어능력을 얻었지만, 10여년간 불안했다. 그때는 마음의 평화가 영어보다 천배는 소중하고 얻기 힘들다는걸 몰랐다.

왜냐면 모두가 내가 영어 잘하고 성적 좋은 아이이길 바랬지 행복하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콩 심은데 콩 난거다. 근데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떤 국가도, 학교도, 회사도 최종목표는 개개인의 행복이 아니다. 그들에게 행복은 생산을 위한 윤활제일 뿐이다.

내가 영어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고 긍정하기 전에 영어를 잘 하게 돼버렸기 때문에 연습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래서 그 후 뭐든 배울 때 틀렸다, 모른다에 초점 맞추고 스트레스 받고, 그 스트레스를 원천으로 날 갈아넣었기 때문에 훌륭한 일꾼, 학생이자 불행한 사람으로 살았다.

다행히 독어는 정신적으로 성숙했을 때 배웠고 천천히 늘고 있다. 난 영어에서 실패한걸 독어에서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다. 답답함, 무능에 대한 자기혐오, 남에게 멍청하고 보잘 것 없이 보일 거라는 공포. 이 모든 감정을 받아들이고 장악하는 걸 연습하고 있다.

나는 나일 뿐이고, 독어를 못해도 충분한 사람이다. 난 친절한 눈빛과 미소를 가졌고, 말이 안 통해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난 한국어와 영어를 할 때 똑똑한 사람이고, 우연히 그들과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른 언어를 배운 것 뿐 우리는 모두 가치있는 사람이다.

난 하고 싶은 얘기가 있고, 돕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내 머릿속엔 내가 만든 우주가있다. 어떤 언어든 태초에 내 머릿속 밖에 있는 이와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언어는 배우면 된다. 나만 낼 수 있는 목소리를 찾는게 제일 어렵고 중요하다.

언어는 전달 도구일 뿐이다. 전달도구에 주눅들어서 목소리를 잃는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언젠가 필요한 이에게 닿을 거다. 언어 잘 하는 사람은 많다.하지만 세상엔 분명 나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있다. 그걸 찾으면 언어는 따라올거다.

노력하는 사람 멋있고 능력 좋고 대단항 사람 많다. 하지만 우리가 멋있으려고, 대단하려고 태어나서 사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도 태어난 김에 재미 좀 보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제일 못하고 형편없는 사람도 당당할 자격, 행복할 자격 있다.

우리 다 떡국 백 번 먹으면 죽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유능하고 권위있는 사람도 어차피 죽는다. 남들과 내면의 비교와 조롱에 수치심 느끼기에 당신은 소중하고 인생은 짧다. 게임처럼 캐릭터 다시 시작할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 가진건 나 하나밖에 없다. 답답하고 한심해도 아껴주고 잘 살자.

https://twitter.com/Ghiblibli1/status/1509096542891913216

“그 사람의 바닥을 알고싶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줘보라. 역경은 누구나 견딜 수 있다. 번영은 위대한 사람만이 견딜 수 있다.”링컨이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Robert Ingersoll이라는 작가 겸 연설가가 한 말이라고 한다.하여튼 동감.잘 나갈 때 하는 말과 행동이 그 사람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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