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먼지

우주먼지 – 청하

모든 게 다 얼어버렸죠
찬바람이 지나간 곳
난 숨이 차 높은 언덕길과
들숨만 있었던 날들

그대를 알지 못했더라면
그대를 스쳐지났더라면

In your hand 그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삶은 치이고 다툼
짙은 어둠 속에 사는
우주먼지일 거야 우주먼지였을 거야
내 곁에 그대가 없었더라면

당신 품을 벗어나 세상 밖은 한 걸음도
걷지 못하고 방황
믿지 못했던 사랑
난 길을 잃었을 거야 눈 감고 찾았던 길도
당신이 아녔더라면 나는

지우고 싶었던 모든 순간
상처만 남았던 내 삶 속에

 In your hand 그 손을 잡지 않았더라면
삶은 치이고 다툼
짙은 어둠 속에 사는
우주먼지일 거야 우주먼지였을 거야
내 곁에 그대가 없었더라면

당신 품을 벗어나 세상 밖은 한 걸음도
걷지 못하고 방황
믿지 못했던 사랑
난 길을 잃었을 거야 눈 감고 찾았던 길도
당신이 아녔더라면

기억되고 싶어 나란 사람
기억하고 싶어 단 한 사람

In your eyes 그대의 눈을 보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안 나
좋은 것만 떠올라

그건 사랑일 거야 우린 운명이었을 거야
이렇게 우리가 만났으니까

별 가득한 하늘은 올려다보지 못하고
고갤 숙인 채 땅만
한숨만 내쉬다가
거울 속 나를 봤을 때 그대가 곁에 없다면
당신이 아녔더라면 나는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데에 사실 간단하지만 핵심이 담겨 있다.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고. 생각을 하는 것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걱정을 한다고 걱정 거리가 사라질 리 없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자. 그리고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정상으로 돌릴 순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현재 처한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자.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하게. 그리고 실패의 기억이 반복된 것처럼. 성공과 실천의 기록을 누적해보자.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종이 한 장

한 끗 차이로 갈린다는 게 그때그때 생각하기에 따라 참 쉽게 울고 웃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지만.

‘살갑다’

올해 들어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 내지는 나의 문제나 나에 대한 불만이 올 추석을 지나면서 좀 선명하게 정리가 되었다. 올 추석에는 살갑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철도 없고 살갑지도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 살가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게 더 가까울듯. 나이를 먹고 머리도 좀 커지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챙김을 받는 입장에서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아직도 막연하게 챙김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느끼기로는 살가운 사람이란 곧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챙겨주는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30대에는 살가운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바란다.

결핍

결핍을 가진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을 통해서 그 결핍을 메우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럴수록 그 사람의 결핍이 드러나는 것 같다. 어떤 결핍은 실제로 가져본 적이 없기에 자기가 무얼 가지지 못했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걸 메우려고 한 노력을 고스란히 그 빈 부분 주변에 또렷하게 자리하게 한다.

research post

진짜 값어치가 있는 지식은 아무도 먼저 나서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럴싸한 페이스북 페이지나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를 쫓으면 계속 그런 글을 받아보는 사람에 머무르는 거 같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 가장 최신 소식까지 계속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분야에서는 되레 내 연구로 새로운 컨텐츠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듯, 적어도 박사 학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물론 내 분야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쉽게 쓰여진 그런 보석같은 글들도 찾아낼 줄 알고, 전부든 일부든 그걸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고. 이게 꼭 연구에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닌 거 같다.

independent researcher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 중 하나를 “independent researcher”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연구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수행하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를 온전히 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데.

학교 연구실에 있을때는 여기에 “홀로” 내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내가 학위를 받는 과정은 곧 내가 분야를 찾아서 어떤 의미있고 기여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고 그래서 학위가 주는 의미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KIST에 파견온 이후로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졌다. 박사학위가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사학위 소지가 전제되는 연구소의 선/책임연구원이나 학교의 교수는 곧 연구실을 가질 수 있는 = 아래에 학생이나 연구원을 둘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는데.

이것도 “independent researcher”와 연관되는 것 같다. 내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이 나 한명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으니.

이럴 때 이 연구를 함께 수행할 사람을 둘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지도하거나 이끌 수 있다는 걸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연구의 일부를 분담하면서도 또 이 부분을 통해 저 사람에게는 경험을 제공하고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학위과정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치 저널의 peer review 처럼.

그래서 박사학위 이후로는 연구의 일선에서 직접 뛰는 것과 연구를 이끄는 것 이 두 가지 일이 있는 것 같고, 학교에 있을 때는 사실 박사학위 이후의 연구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데, KIST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서 뛰는 박사님들, 어떤 책임자의 위치로 올라가는 과정들, 학생을 두고 연구실을 만들고 그룹을 이끌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하고 알게된 게 정말 좋았다.

조물주와 피조물

에이리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인조 인간 내지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서는, 자신들이 하는 일 중에 굳이 자신들이 하지 않아도 되거나 내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 하거나 보조하는데 쓰면서, 왜 인간을 창조했을 거라 생각하는 어떤 절대자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창조를 하는 어떤  고유하고 숭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절대자가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창조했다고 믿는 걸까? 굉장히 자만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시리즈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 정도인 거 같다. 물론 재밌었다. 그치만 프로메테우스에서 깔아놓은 세계관이랄까 그 안에서 절대자 혹은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와 그 아이러니함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1367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했다. “그것만으로 좋지 않다.”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그것도 좋지 않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논어, 자로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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