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갑다’

올해 들어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 내지는 나의 문제나 나에 대한 불만이 올 추석을 지나면서 좀 선명하게 정리가 되었다. 올 추석에는 살갑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철도 없고 살갑지도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 살가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게 더 가까울듯. 나이를 먹고 머리도 좀 커지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챙김을 받는 입장에서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아직도 막연하게 챙김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느끼기로는 살가운 사람이란 곧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챙겨주는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30대에는 살가운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바란다.

research post

진짜 값어치가 있는 지식은 아무도 먼저 나서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럴싸한 페이스북 페이지나 블로그에서 하는 이야기를 쫓으면 계속 그런 글을 받아보는 사람에 머무르는 거 같다. 그런 이야기를 읽고 가장 최신 소식까지 계속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분야에서는 되레 내 연구로 새로운 컨텐츠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듯, 적어도 박사 학위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물론 내 분야가 아니라면 소화하기 쉽게 쓰여진 그런 보석같은 글들도 찾아낼 줄 알고, 전부든 일부든 그걸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고. 이게 꼭 연구에만 해당하는 얘기도 아닌 거 같다.

independent researcher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 중 하나를 “independent researcher”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연구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수행하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를 온전히 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데.

학교 연구실에 있을때는 여기에 “홀로” 내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내가 학위를 받는 과정은 곧 내가 분야를 찾아서 어떤 의미있고 기여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고 그래서 학위가 주는 의미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KIST에 파견온 이후로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졌다. 박사학위가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사학위 소지가 전제되는 연구소의 선/책임연구원이나 학교의 교수는 곧 연구실을 가질 수 있는 = 아래에 학생이나 연구원을 둘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는데.

이것도 “independent researcher”와 연관되는 것 같다. 내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이 나 한명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으니.

이럴 때 이 연구를 함께 수행할 사람을 둘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지도하거나 이끌 수 있다는 걸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연구의 일부를 분담하면서도 또 이 부분을 통해 저 사람에게는 경험을 제공하고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학위과정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치 저널의 peer review 처럼.

그래서 박사학위 이후로는 연구의 일선에서 직접 뛰는 것과 연구를 이끄는 것 이 두 가지 일이 있는 것 같고, 학교에 있을 때는 사실 박사학위 이후의 연구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데, KIST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서 뛰는 박사님들, 어떤 책임자의 위치로 올라가는 과정들, 학생을 두고 연구실을 만들고 그룹을 이끌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하고 알게된 게 정말 좋았다.

학습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영어나 수학 학습지도 이것저것 해보고 아침에 전화영어도 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 처음 들어가서 누가 성문영어를 종합까지 하고 왔다더라 누구는 정석을 수2까지 했다더라 누구는 실력 정석을 푼다더라 하는 선행학습 뭐 그런 준비들과 분위기에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낯선 곳, 낯선 환경 속에서 아둥바둥 사는 그 틈에서 내 자식들 뭐라도 하나 더 시켜보려고 했던 그런 것.

후배

후배에게 일을 시키는 태도가 무례해서 싫다. 후배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다를 수도 있고. 또는 아무리 ‘시킨’다고 해도 올바른 태도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근데 다른 걸까 틀린 걸까.

읽기와 쓰기

새해라고 나라는 사람이 갑자기 쩜프를 해서 어떤 부분이 돌연 내가 바라던 대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는데 그건 더 읽고 쓰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더 많은 활자를, 모니터보다는 종이와 전자잉크를 통해, 접했으면 좋겠다. 마우스나 키보드를 두드리기보다는 펜을 더 자주 들었으면 좋겠다. 그치만 오늘 하지 못하는 일은 내일도 마찬가지고 새해에도 똑같을 것이다. 그러니 당장 지금부터, 오늘부터 노력해야겠지.

그래서 충동적으로 도메인을 바꿔버렸다. ‘조각모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또 하나 새해에는 좀 덜 충동적이었으면 좋겠다.

자존감

재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냥 요즘 하는 생각을 정리해보면, 나는 뭐랄까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막내라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라거나 여튼 그런 이유로 뭔가 돋보이고 예쁨 받는 사람이라는 점이 자아 형성에 한 몫을 한 거 같다. 고등학교때는 그게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했고, 학부때는 학점은 그냥저냥했지만 프로젝트 같은 거 하면 비교적 두뇌회전이 빠른편이라고 자위하고 동아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꾼 거 같고. 대학원 초기까지는 어째저째 넘어왔지만 이걸 토대로 만들어진 자아가 본격적으로 한계에 부딪힌게 대학원 중반부터인 거 같고. 내가 그런 포지션에 위치하지 못한다는게 어떤 욕구불만으로 작용했던 거 같기도 하다.

작년의 수영이나 올해의 배드민턴이 운동 자체에서 삶의 의욕을 찾은 것도 없진 않지만, 그거 말고도 새로운 걸 배우면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빨리 적응하고 같은 시간에 더 앞서 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자기만족을 준 거 같기도 하다. 예전부터 나는 승부욕,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꺾고 이긴다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 편이고, 누구와 대결해서 지는 것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데,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남들보다 뒤쳐지는 느낌? 그런 걸 정말 싫어러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딱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여튼 내 자존감은 2014년을 전후로 바닥을 쳤고 2014년~2015년을 지나면서 그나마 반등을 하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 밑에는 앞서 말한 새로 배웠던 운동에서 온 것들, 그리고 내가 하는 연구로 국제학회지만 논문 두 개를 냈다는 점에서 무너졌던 자존감을 스스로 좀 회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텀블러

무엇인가를 계획적/규칙적으로 기록하고 남기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럴 사람이 못 된다는 것도 알고 있고. 단지 트위터에는 너무 이야기가 쉽게 타임라인에 흘러가버려서. 트위터처럼 짤막한 글을 쓰는 데에는 충분히 익숙하니까. 길든 짧든 개중에 남겨두고 싶었던 걸 다른 곳에 모아보자는 심산이었다.

꽤나 잊고 살다가 그냥 가끔 한번씩 무얼 끄적이고. 또 한동안 잊고 사는 것의 반복이었다. 큰 애착도 없었다.

얼마 전부터 텀블러는 너무 트위터에 가까워서 다시 블로그로 회귀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텀블러가 나쁜 건 아닌데, 글이나 그림을 구분 지어서 모으는 데에는 좀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 기회에 워드프레스를 건드려봤고. 대충 구성을 마치고 텀블러의 글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이 곳에 모인 글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무엇인가를 계획적/규칙적으로 기록해볼 심산은 아니었다. 다시 돌아보니 역시나 아니었다. 근데 마치 지난 일년 남짓 혼란스러웠던 시간들 속에서 헨젤과 그레텔 마냥 놓은 돌멩이들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딱히 길을 잃을까 무서워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둔 건 아니었는데.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나오는 타점 기록계처럼. 그때 그 시간들이 이따금 타자기처럼 종이에 활자를 때려 넣은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텀블러는 어찌 될 지 모르겠다. 도메인을 텀블러에서 워드프레스로 옮겼고 .co.kr에서 .kr로 갈아탔다.

단체생활

이래저래 뭔가 모임이 만들어질 때마다 결국에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남들보다 한가한 것도 아닌데 매번 사람들 모으는 거 같아서 빈정 상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냥 시간 될 때 삼삼오오 만나면 되지 뭐하러 그런 걸 강제하냐고 질린다고 하고.

누나 결혼 일주일 전에 함 들어오던 날 낮에 아빠 회사 친구가 결혼식 못 오신다고 축의금 전해줄 겸 집에 찾아 오셨는데, 잠시 앉아서 아빠랑 아빠 친구가 하셨던 얘기가 제법 흥미로웠다. 아빠 친구들끼리 모임을 하는데 그 모임 주도하는 사람들 싫다고. 그 사람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대로만 움직인다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그냥 안갈란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시던데.

결국 그렇게 나이를 먹고 사회 경험을 쌓아도 사람 모이는 곳에서는 얼추 비슷한 얘기들이 삐져나오는가봐. 꼭 내 경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듣다 보면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전자를 느꼈던 사람도 있고 후자를 느꼈던 사람도 있더라.

사실 사람 사이에서 고만고만한 일들은 좋은 게 뭔지 또 나쁜 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다 거기서 거기고 이렇게 하면 이 말이 맞고 저렇게 하면 저 말이 맞고. 그렇게 대단하게 틀린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둘다 장단 맞출 줄 알면 그거로 된 거 같다. 그것 가지고 투닥거리는 꼴도 지치더라.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둘 중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서도, 또 어떤 상황에서도 아쉽지 않을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려는 거 같다, 최근의 나는. 요즘 나의 대인관계를 이 말보다 더 잘 설명한 적은 없는 거 같다.

기립

가장 밑바닥에 떨어져 있을 때 그냥 이불에서 나와서 두 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래서 조금이라도 침전하는 기분이 들 때면 어떻게든 움직이는 걸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실천은 별개의 영역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