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Enter" to skip to content

Category: articles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데에 사실 간단하지만 핵심이 담겨 있다.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고. 생각을 하는 것으론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같은 의미로 걱정을 한다고 걱정 거리가 사라질 리 없다.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인식하자. 그리고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원하는 대로, 정상으로 돌릴 순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현재 처한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자.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하게. 그리고 실패의 기억이 반복된 것처럼. 성공과 실천의 기록을 누적해보자.

조립은 분해의 역순이다.

‘살갑다’

올해 들어 겪고 있는 어떤 어려움 내지는 나의 문제나 나에 대한 불만이 올 추석을 지나면서 좀 선명하게 정리가 되었다. 올 추석에는 살갑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철도 없고 살갑지도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아니 살가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게 더 가까울듯. 나이를 먹고 머리도 좀 커지면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챙김을 받는 입장에서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 되어야 할텐데. 아직도 막연하게 챙김을 바라고 기다리는 사람인 것 같다. 요즘 느끼기로는 살가운 사람이란 곧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먼저 챙겨주는 사람인 것 같고. 그래서 30대에는 살가운 사람이 되기를 나에게 바란다.

independent researcher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 중 하나를 “independent researcher”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연구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수행하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를 온전히 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데.

학교 연구실에 있을때는 여기에 “홀로” 내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내가 학위를 받는 과정은 곧 내가 분야를 찾아서 어떤 의미있고 기여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고 그래서 학위가 주는 의미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KIST에 파견온 이후로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졌다. 박사학위가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사학위 소지가 전제되는 연구소의 선/책임연구원이나 학교의 교수는 곧 연구실을 가질 수 있는 = 아래에 학생이나 연구원을 둘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는데.

이것도 “independent researcher”와 연관되는 것 같다. 내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이 나 한명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으니.

이럴 때 이 연구를 함께 수행할 사람을 둘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지도하거나 이끌 수 있다는 걸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연구의 일부를 분담하면서도 또 이 부분을 통해 저 사람에게는 경험을 제공하고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학위과정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치 저널의 peer review 처럼.

그래서 박사학위 이후로는 연구의 일선에서 직접 뛰는 것과 연구를 이끄는 것 이 두 가지 일이 있는 것 같고, 학교에 있을 때는 사실 박사학위 이후의 연구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데, KIST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서 뛰는 박사님들, 어떤 책임자의 위치로 올라가는 과정들, 학생을 두고 연구실을 만들고 그룹을 이끌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하고 알게된 게 정말 좋았다.

학습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영어나 수학 학습지도 이것저것 해보고 아침에 전화영어도 하고 그랬는데, 갑자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고등학교 처음 들어가서 누가 성문영어를 종합까지 하고 왔다더라 누구는 정석을 수2까지 했다더라 누구는 실력 정석을 푼다더라 하는 선행학습 뭐 그런 준비들과 분위기에 적잖은 당혹스러움을 느꼈는데 우리 엄마 아빠는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낯선 곳, 낯선 환경 속에서 아둥바둥 사는 그 틈에서 내 자식들 뭐라도 하나 더 시켜보려고 했던 그런 것.

후배

후배에게 일을 시키는 태도가 무례해서 싫다. 후배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다를 수도 있고. 또는 아무리 ‘시킨’다고 해도 올바른 태도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를 수도 있고.

근데 다른 걸까 틀린 걸까.

Close Bitnami banner
Bitna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