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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s

종이 한 장

한 끗 차이로 갈린다는 게 그때그때 생각하기에 따라 참 쉽게 울고 웃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어렵다는 건 알고 있지만.

결핍

결핍을 가진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을 통해서 그 결핍을 메우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그럴수록 그 사람의 결핍이 드러나는 것 같다. 어떤 결핍은 실제로 가져본 적이 없기에 자기가 무얼 가지지 못했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걸 메우려고 한 노력을 고스란히 그 빈 부분 주변에 또렷하게 자리하게 한다.

조물주와 피조물

에이리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인조 인간 내지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서는, 자신들이 하는 일 중에 굳이 자신들이 하지 않아도 되거나 내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 하거나 보조하는데 쓰면서, 왜 인간을 창조했을 거라 생각하는 어떤 절대자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창조를 하는 어떤 고유하고 숭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절대자가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창조했다고 믿는 걸까? 굉장히 자만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시리즈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 정도인 거 같다. 물론 재밌었다. 그치만 프로메테우스에서 깔아놓은 세계관이랄까 그 안에서 절대자 혹은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와 그 아이러니함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Confrontation

마주하라.

나의 딜레마는 미움받기 싫어하는 점에서 시작된다. 싫어하는 건지 피하는 건지 무섭거나 두려워하는 건지는 헷갈린다.

 

논문 읽기 = 논문 쓰기

내가 하나의 논문에서 읽을 수 있는 만큼만 내가 쓸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논문에서 읽고 얻는 것들만 내가 써서 전달할 수 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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