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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 May 2017

independent researcher

박사학위가 갖는 의미 중 하나를 “independent researcher”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은 하나의 연구를 제안하고 기획하고 수행하는 그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부터 열까지를 온전히 홀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있다는데.

학교 연구실에 있을때는 여기에 “홀로” 내지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방점을 찍었던 것 같다.

내가 학위를 받는 과정은 곧 내가 분야를 찾아서 어떤 의미있고 기여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하고 검증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이고 그래서 학위가 주는 의미는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KIST에 파견온 이후로는 여기에 하나가 덧붙여졌다. 박사학위가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사학위 소지가 전제되는 연구소의 선/책임연구원이나 학교의 교수는 곧 연구실을 가질 수 있는 = 아래에 학생이나 연구원을 둘 수 있다는 것도 의미하는데.

이것도 “independent researcher”와 연관되는 것 같다. 내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연구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적 자원이 나 한명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으니.

이럴 때 이 연구를 함께 수행할 사람을 둘 수 있고, 결국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을 지도하거나 이끌 수 있다는 걸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연구의 일부를 분담하면서도 또 이 부분을 통해 저 사람에게는 경험을 제공하고 내가 아는 것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

학위과정의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마치 저널의 peer review 처럼.

그래서 박사학위 이후로는 연구의 일선에서 직접 뛰는 것과 연구를 이끄는 것 이 두 가지 일이 있는 것 같고, 학교에 있을 때는 사실 박사학위 이후의 연구에 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제한적인데, KIST에서는 연구의 최전선에서 뛰는 박사님들, 어떤 책임자의 위치로 올라가는 과정들, 학생을 두고 연구실을 만들고 그룹을 이끌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하고 알게된 게 정말 좋았다.

articles

조물주와 피조물

에이리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인간과 아주 흡사한 인조 인간 내지는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서는, 자신들이 하는 일 중에 굳이 자신들이 하지 않아도 되거나 내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대신 하거나 보조하는데 쓰면서, 왜 인간을 창조했을 거라 생각하는 어떤 절대자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유사한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인간은 창조를 하는 어떤 고유하고 숭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절대자가 어떤 특별한 뜻을 가지고 창조했다고 믿는 걸까? 굉장히 자만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는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시리즈를 이어주는 다리 같은 역할 정도인 거 같다. 물론 재밌었다. 그치만 프로메테우스에서 깔아놓은 세계관이랄까 그 안에서 절대자 혹은 조물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와 그 아이러니함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asides

1367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했다. “그것만으로 좋지 않다.”

“마을 사람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그것도 좋지 않다. 마을의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논어, 자로 제2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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