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은 고유성에 대해 그것이 마치 보편적인 개념인 것처럼 말합니다. 예술가에게 있어 남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받아들여지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덧없는 세기에 살고 있어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잔여라는 것도 없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낡아빠진 것으로 취급되죠. 헤드라인을 읽고 나면 기사의 내용이나 정보조차 휘발 됩니다. 이것이 예술이 고유성을 잃어버린 이유이자 진정한 것을 찾기 어려워진 이유라고 생각해요. 고유의 존재를 잃은 세상에서, 고유성이 눈에 띄고 중요하게 된 이유이죠. 해석자(피아니스트)는 자신을 남들과 구별시키길 바라면 안되는 것 같아요. 해석자는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야하죠. 우리는 글렌굴드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를 따라하려고 한다면 초장부터 실패할 거에요. 그것이 우리가 멈춰야 하는 이유에요. 찾는 것을 그만 해야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을 좀 더 관찰해야죠. 우리를 고유하게 만드는 것들을 찾아내야 하구요.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거에요.
독창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름다우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해설가의 아름다움은 그의 해석을 넘어서 음악 자체에 있지만 말입니다.
아름다움은 보편과 주관이라는 모순 속에 있어요. 예를 들어, 스타르보는 아름다운 곡은 아니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곡이 대단하지 않다고는 할 수 없어요. 대중들은 아름다움과 예술의 이분법을 이해해야 해요. 모든 예술이 아름다운 건 아니고,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그게 곧 최악인 건 아니거든요. 스트라빈스키, 쇼스타코비치, 라벨의 레파토리는 절대 쇼팽의 녹턴과 같이 들리지는 않을거에요, 그렇지만 여전히 훌륭한 예술작품이죠. 예술가로서 저희의 의무는 이러한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유로, 마드리드 공연에서는 야나첵과 쇼팽을 함께 프로그램에 넣었어요. 두 작품 모두 각기 다른 시각으로 세상의 미를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collecting frag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