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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에게 열등감을 느낍니다.

‘난 왜 뽑힌 거야?’

바보처럼 멍하니 합격통지서를 확인한 순간부터 그 고민은 시작됐다. 나보다 학교 성적도 좋고 착하고 재능 있는 친구들도 많은데 이렇게 좋은 학교에 내가 뽑혔다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 입학사정관 선생님, 교수님 가리지 않고 여쭈어 보며 돌아다녔지만, 그 누구도 속 시원한 답변을 내주시진 않으셨다. 결국 지쳐서 내가 그렇게 인상 깊었던 학생은 아니었겠거니 생각하면서 풀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고민을 밀어두고 꿈같이 행복했던 학교생활을 잠시 동안 만끽했었다.

그런데 힘든 순간들마다 그 고민이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과제와 퀴즈점수가 형편없이 바닥을 치던 날, 첫 중간고사를 앞둔 날, 진로 때문에 고민하던 날, 심지어 농구를 하다 사정없이 블로킹을 당했던 날에도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넌 도대체 왜 뽑힌 거냐고. 뭐가 그렇게 잘나서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냐고. 그럴 생각이 들 법도 한 것이 생활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다들 멋있고 매력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진로를 확실하게 정한 친구가, 키가 커서 농구를 편하게 잘하는 친구가 있기 마련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버릇도 있었지만 내가 그다지 뛰어나거나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건 객관적으로도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열등감 때문에 우리학교가 점점 더 좋아졌다. 나이와 학번을 불문하고 내가 동경하는 멋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노래하고, 운동하고,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면서 어설프게나마 그들을 따라가기 위해 노력했다. 역시나 그들을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짧다면 짧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을 느낄 만큼 행복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 속에서 이를 악물고 발버둥칠수록 점점 더 괴로워짐과 동시에 행복해지는 이상한 순환이 반복되었다.

아직도 난 내가 포스텍에 뽑힌 이유를 모른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제각기 여러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동경심에 휩쓸려 확고한 중심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릴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즐겁다. 열등감 때문에 내 자신이 흔들릴 때야 비로소 즐거운 나를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때문에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만나왔고 앞으로 만나게 될 이 학교 안에서의 모든 환상적인 인연들에게, 자신들의 치명적인 매력으로 나를 흔들리게 한 그들에게 기꺼이 감사드린다.

포항공대신문,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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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내면의 문제를 만나면 무시하고 회피하기 일쑤다. 역시나 근본적인 해결도 아닐 뿐더러 당당하게 건강하게 대면조차 하지 않으려 들어서 속으로 썩어가고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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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다이어리에도 끝까지 꾸준하게 무엇이든지 써본 적도 없으면서 나는 항상 다이어리 탓을 하곤 하지 이 다이어리가 맘에 들지 않아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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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라는 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삶을 갉아먹기도 하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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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한 얘기였지만, 제출기한 없었으면 영영 못 썼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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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집안에서나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항상 주목을 받던 편이라 한살한살 나이를 먹고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을 거치면서 나는 그렇지 않음에 적응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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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함과 이해함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어떤 하나의 기준은 저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이더라도 나는 닿는데까지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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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어떤 하나의 기준은 저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이더라도 나는 닿는데까지 이해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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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생활

이래저래 뭔가 모임이 만들어질 때마다 결국에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남들보다 한가한 것도 아닌데 매번 사람들 모으는 거 같아서 빈정 상한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그냥 시간 될 때 삼삼오오 만나면 되지 뭐하러 그런 걸 강제하냐고 질린다고 하고.

누나 결혼 일주일 전에 함 들어오던 날 낮에 아빠 회사 친구가 결혼식 못 오신다고 축의금 전해줄 겸 집에 찾아 오셨는데, 잠시 앉아서 아빠랑 아빠 친구가 하셨던 얘기가 제법 흥미로웠다. 아빠 친구들끼리 모임을 하는데 그 모임 주도하는 사람들 싫다고. 그 사람들은 자기 입맛에 맞는대로만 움직인다고. 그래서 다음부터는 그냥 안갈란다는 식의 이야기를 나누시던데.

결국 그렇게 나이를 먹고 사회 경험을 쌓아도 사람 모이는 곳에서는 얼추 비슷한 얘기들이 삐져나오는가봐. 꼭 내 경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듣다 보면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도 전자를 느꼈던 사람도 있고 후자를 느꼈던 사람도 있더라.

사실 사람 사이에서 고만고만한 일들은 좋은 게 뭔지 또 나쁜 게 뭔지 모르겠다. 그냥 다 거기서 거기고 이렇게 하면 이 말이 맞고 저렇게 하면 저 말이 맞고. 그렇게 대단하게 틀린 것도 없고 잘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냥 둘다 장단 맞출 줄 알면 그거로 된 거 같다. 그것 가지고 투닥거리는 꼴도 지치더라.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둘 중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하면서도, 또 어떤 상황에서도 아쉽지 않을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살려는 거 같다, 최근의 나는. 요즘 나의 대인관계를 이 말보다 더 잘 설명한 적은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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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은 항상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어서, 언제든 어디서든 만나더라도 금방 다시 그 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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