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느님이 무도에서 했던 말 중에 두 가지가 자꾸 떠오른다. 하나는 이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말. 다른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때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말.
요다는 어린 스카이워커에게 말했다. Do, or do not. There is no try.
아래에 한 지인께서 페이스북에 올리신 이야기를 옮겨본다.
어차피 인생이 긴데 젊을 때에 연습삼아 이것저것 대충 해보고 맞는 거 찾아 나이먹으면 실전으로 해볼 수도 있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많은 젊음들이 그런 삶을 살고 있는데. 최근 페북에서 문득 무당파국민연합인가 하는 당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전 국회의원 김옥선씨가 누군가 찾아봤더니, 19세 때 625 전쟁 고아들을 위한 보육원을 세워 운영하고 25세까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각각 세워 26세일떄엔가는 벌써 이사장 자리에 앉았더란다. 물론 그런 사업을 위해 필요한 큰 돈이 접근 가능하다는 메리트도 가지고 있었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일들이 그에게 그 당시에는 소명이며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그가 대학에 가지 않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로 다가왔을 것이라는 거다.
내 앞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연습’이라고, 실전이기엔 아직 어리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왜 나는 잘 하면 정말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는,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일들을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하는 것들을 ‘연습 삼아’ ‘한번’ 해보는 상황에 맞부딪히게 되는가? 그걸 연습으로 생각하는 건 나인가 아니면 사회인가.
나는 왜 아직 실전에 발딛고 싶어하지 않는 것인가? 스물일곱이라는 내 나이가 사회에서 아직 어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왜일까? 과연 몇 년이 지나야 그런 일들이 나에게 실전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일까?
(진달래님이 쓰신 글, 원본은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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