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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운용되지 않는다거나 인정/지지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통제감을 느끼려 & affectional hunger 채우려 일부러 어깃장 놓아 통제권을 본인쪽으로 가져오려는 나이브한 시도들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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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ing frag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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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대로 운용되지 않는다거나 인정/지지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통제감을 느끼려 & affectional hunger 채우려 일부러 어깃장 놓아 통제권을 본인쪽으로 가져오려는 나이브한 시도들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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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한번 말합니다. 약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닙니다. 약한 사람은 단지 약해서 남에게 지랄을 할 수가 없었을 뿐이지 그것은 남에게 지랄을 하고 싶지 않아서 착하게 산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From the moment
I started rolling my dad’s tube socks
And shooting imaginary
Game-winning shots
In the Great Western Forum
I knew one thing was real:I fell in love with you.
A love so deep I gave you my all —
From my mind & body
To my spirit & soul.As a six-year-old boy
Deeply in love with you
I never saw the end of the tunnel.
I only saw myself
Running out of one.And so I ran.
I ran up and down every court
After every loose ball for you.
You asked for my hustle
I gave you my heart
Because it came with so much more.I played through the sweat and hurt
Not because challenge called me
But because YOU called me.
I did everything for YOU
Because that’s what you do
When someone makes you feel as
Alive as you’ve made me feel.You gave a six-year-old boy his Laker dream
And I’ll always love you for it.
But I can’t love you obsessively for much longer.
This season is all I have left to give.
My heart can take the pounding
My mind can handle the grind
But my body knows it’s time to say goodbye.And that’s OK.
I’m ready to let you go.
I want you to know now
So we both can savor every moment we have left together.
The good and the bad.
We have given each other
All that we have.And we both know, no matter what I do next
I’ll always be that kid
With the rolled up socks
Garbage can in the corner
:05 seconds on the clock
Ball in my hands.
5 … 4 … 3 … 2 … 1Love you always,
Kobe
동문부터 도서관, 생명공학동을 지나 우리 건물까지 이어지는 길에 가로수가 한그루도 없어서 여름에는 정말 땡볕 아래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 어제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보도블럭을 네모지게 들어낸 걸 보니 가로수를 심는게 아닌가 싶다.
인생은 너무나 많은 우연들이 필연적인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다양해집니다.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전공분야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길로 접어든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을 겁니다. 전공이 같았던 동년배 학우들이 각기 다른 진로를 선택함으로써 흩어진 경험도 했을 겁니다. 같은 전공으로 함께 대학원에 진학했는데도 전공 내 하위영역에 따라, 그리고 지도교수의 성향과 영향력에 따라 상당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을 겁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한국교육학회나 분과학회에 정회원으로 또는 준회원으로 가입한 젊은 학자들에게 학자로서의 삶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며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합니다. 이 조언은 철칙도 아니고 금언도 아닙니다. 학자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노하우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읽기를 바랍니다. 이 조언은 제가 젊었을 때 듣고 싶었던 것들입니다. 젊은 교육학도였을 때, 저는 이러한 유형의 안내를 받지 못했습니다. 직업에 따라 상당히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저는 직업을 생업(生業)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학문은 권력이나 재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성공은 학문적 업적으로만 판가름됩니다. 자신의 직업을 중시한다면, 그 직업을 소득원으로써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치로 받아들여야 맞습니다. 아래에 나열된 조언들은 제가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조언들은 제 자신에게도 적용됩니다.
젊은 교육학자들이 학자로서의 일상을 즐거워하기를 기원합니다. 여러 가지 학술모임에서 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들의 즐거움과 행복으로 한국의 교육학이 발전하기를 기대합니다.
오욱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한국교육학회, 뉴스레터, 45(3), 5-9, 통권260호/2009,09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을 피하십시오. 자신의 거짓을 관찰하고 매 시간, 매 순간 그것을 들여다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이건 자기 자신이건 누군가를 거리껴하지도 마십시오. 부인의 내부에서 어떤 것이 부인께 추잡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부인께서 자기 내부에서 그것을 인지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정화되는 겁니다. 공포도 역시 피하십시오, 공포란 그저 온갖 거짓의 결과일 따름이지만. 사랑을 성취함에 있어 자신의 옹졸함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이와 관련하여 부인의 어떤 고약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큰 두려움을 갖지는 마십시오. 부인께 이 보다 더 즐거운 얘기를 더 이상 들려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니, 몽상적인 사랑과 비교할 때 실천적인 사랑이란 잔혹하고 무서운 것이니까요. 몽상적인 사랑은 어서 빨리 만족할 만한 위업을 달성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우러러봐 주길 갈망합니다. 그러다보면 정말로, 그렇게 모든 이들의 시선을 받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목숨조차도 내놓을 것이지만, 다만 그것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마치 연극 무대에서처럼 어서 빨리 성사된다는 조건으로만 말이죠. 하지만 실천적인 사랑, 그것은 노동이자 인내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말하자면 완전히 학문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리 말해 두건대 부인께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멀어졌음을 목도하고 공포감을 느끼게 될 바로 순간 — 바로 그 순간에, 부인께 미리 말씀 드리지만, 부인은 갑자기 목표에 도달하게 될 것이며 부인 앞에서 언제나 부인을 사랑했고 언제나 부인을 인도했던 주님의 기적적인 힘을 보게 될 겁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 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대니 그레고리, <모든 날이 소중하다> 중에서
낢이 사는 이야기에서 재인용
[오늘의 역사] 2015년 11월 04일: 배드민턴 클럽분들과의 혼성복식에서 애인님과 파트너로 첫 승을 올림.
재수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그냥 요즘 하는 생각을 정리해보면, 나는 뭐랄까 어렸을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막내라거나 공부 잘하는 아이라거나 여튼 그런 이유로 뭔가 돋보이고 예쁨 받는 사람이라는 점이 자아 형성에 한 몫을 한 거 같다. 고등학교때는 그게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했고, 학부때는 학점은 그냥저냥했지만 프로젝트 같은 거 하면 비교적 두뇌회전이 빠른편이라고 자위하고 동아리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꾼 거 같고. 대학원 초기까지는 어째저째 넘어왔지만 이걸 토대로 만들어진 자아가 본격적으로 한계에 부딪힌게 대학원 중반부터인 거 같고. 내가 그런 포지션에 위치하지 못한다는게 어떤 욕구불만으로 작용했던 거 같기도 하다.
작년의 수영이나 올해의 배드민턴이 운동 자체에서 삶의 의욕을 찾은 것도 없진 않지만, 그거 말고도 새로운 걸 배우면서 내가 남들보다 빨리 배우고 빨리 적응하고 같은 시간에 더 앞서 나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자기만족을 준 거 같기도 하다. 예전부터 나는 승부욕,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꺾고 이긴다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는 편이고, 누구와 대결해서 지는 것도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데,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남들보다 뒤쳐지는 느낌? 그런 걸 정말 싫어러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게 딱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여튼 내 자존감은 2014년을 전후로 바닥을 쳤고 2014년~2015년을 지나면서 그나마 반등을 하기 시작한 거 같은데, 그 밑에는 앞서 말한 새로 배웠던 운동에서 온 것들, 그리고 내가 하는 연구로 국제학회지만 논문 두 개를 냈다는 점에서 무너졌던 자존감을 스스로 좀 회복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에겐 의도가 있을 수 없다. 친일파에 대한 공분, 정의 실현에서 느끼는 통쾌함 그런 건 같이 느끼지만 배우의 입장에선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다. 편견이 없어야 연기가 자연스러워진다. 배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 정치 성향은 있을 수 있지만 배우로서는 아니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내 정치 성향은 이런 거다. 황지우의 시에 그런 구절이 나온다. ‘버스 운전수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시킨다’. 이게 내 생각이다.